붉은색은 읽는


1. 스티븐 킹 / 죽음의 무도 : 과연 이걸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 읽었다. 오가는 지하철 안처럼 다른 할 짓이 없는 상황 하에서는 가능하더라.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번역이 별로인지 좀처럼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주관적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데, 왜냐면 누군가가 내가 번역 별로라는 책을 괜찮다고 하고서는 오히려 내가 괜찮다고 말한 책의 번역이 더욱 더 별로라고 한 적이 있다. 난 무조건 원문대로 번역된 딱딱한 글보다는 읽기 쉽고 떠올리기 쉽게 번역된 글을 좋아한다.) 그래도 어찌 꾸역꾸역 읽었다. 호흡이 긴 글이라서 역시나 큰 화면의 이북리더기를 사고 싶어졌다. 초반엔 요타폰2로 읽다가 사운드로 바꿔서 읽으니 진도가 죽죽 나갔거든. 작가가 인용하는 소설, 영화, 드라마가 대부분 모르는 것이라서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나만은 느꼈다. 스티븐 킹은 공포장르에 대한 사랑이 굉장하다는 거.


2. 한윤정 / 명작을 읽을 권리 : 예전에 샘에서 대여해서 읽었던 책인데 종종 생각이 나서 아예 사버렸다. 다시 읽어도 재미있다. 난 책을 소개하는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좋아한다는 것치고는 몇 권 읽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이 책은 특별하다. 흔한(?) 고전문학을 줄거리만 읊어대면서 소개하지 않으니까. 이 책은 몇번이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3. 현경미 / 인도, 신화로 말하다 : 사실 이집트신화를 읽고 싶었는데 이북으로 나온 읽을 만한 책이 없더라. 해서 역시나 평소 관심이 있던 인도신화에 대한 책을 골랐다. 좀 가벼워보이는 것으로. 읽고 나니 손쉽게 읽을 만했지만 인도신화에 대해 좀 더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4. 김형준 / 인도신화 : 인도신화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져서 이걸 읽는 중인데 어째서인지 유시진의 신명기가 계속 떠올랐다. 후반부 읽는 중으로, 신화의 반복되는 레퍼토리에 조금씩 질려가고 있다. 그리고 신명기에서도 그렇지만 여기서도 인드라는 찌질하더라. 신들의 왕이라면서 사실은 바지사장인지 자기 자리를 걸핏하면 뺏긴다.


5. 윤홍균 / 자존감수업 : 한참 자존감이 바닥을 뚫을 때 대여해서 tts 기능으로 들으면서 다녔다.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읽는 당시에는 납득가는 내용들이 가득이었는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그냥 나 자신을 칭찬하라는 거 정도? 나만이라도 나를 열심히 칭찬해보니까, 실수를 하고 그걸 본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면 위축되어 다시 또 실수를 하고 점점 무기력해지는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실수정도야 할 수도 있는 거지! 중요한 건 실수를 점점 줄여나가는 거니까.


6. 설민석 / 조선왕조실록 : 구어체로 쓰인 책은 읽기가 힘들다. (희곡도 완전히 빠져들기 전까지는 그렇다) 그래도 내용이 흥미로워서 진도가 죽죽 나가고 있다. 읽다보니 구어체에도 익숙해졌고 내용도 그렇게 깊게 들어가지 않아서 가볍게 읽기에 좋다. 수월하게 완독.


7. 박신영 /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 제목을 정말 흥미돋게 잘 지었다. 동화(?)를 비꼬아보는 이야기. 이전에 읽다가 포기했는데 그건 책이 pdf여서 눈알이 빠질 것 같아서 그런 것이지 책이 재미없어서는 아니었다. 이번에 사운드로 읽으면서 가로보기로 했더니 볼 만하더라. 재미있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굳어진 내 손가락이 안타깝다.


8. 아일린 파워 / 중세의 여인들 : 딱딱한 글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긴장했는데 의외로 술술 읽혔다? 분량이 적기도 하다. 예상보다 단편적이고 얕은 느낌. 무언가를 쓰기 위한 사전조사단계의 글 같았다.


9. 마고 리 셰털리 / 히든 피겨스 : 영화를 재미있게 봤지만 픽션이 많이 섞였다고 해서 원작을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영화와 비교해보니 영화는 확실히 '실화'라고 하기에는 각색을 많이 했더라. 영화에는 주된 인물 세 명이 나와서 인상깊은 에피소드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책은 여러 인물들이 번갈아가며 나오다보니 조금 헷갈린다. 게다가 소재는 흥미롭지만 풀어낸 글은 지루하다. 번역 탓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원글 자체가 딱딱한 거 같다. 그래도 결국은 다 읽었다. 차별에 맞선 흑인들의 노력과 조금씩 쟁취해내는 개인의 승리와 집단의 승리에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그들만의 연대와 자긍심에 부러움도 느꼈지만, 이 시대에 와서도 편견과 차별은 아직도 존재하며 승리 역시 결국은 일부의 것이라는 점을 떠올리니 씁쓸해졌다.


10.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 체체파리의 비법 : 표제작인 체체파리의 비법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지루해서 영혼없이 읽다가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에서 폭소하고 말았다. 여자를 타는 말로 생각하거나, 줄세워서 몰아가야하는 양으로 생각하는 두 인물의 주접에 그만...흐. 후반에 터지는 재미가 있지만 작가의 서술은 내 기준으로는 참 부스스하다. 그래서 단편 초중반은 지루하게 후반은 흥미롭게 읽는 여정이 반복되는 중. 새로운 단편을 읽으면서 지금 지루한 단계에 있다. / 결국 다 읽어치웠으며 남은 것은 체체파리의 비법과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


11.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 영화를 먼저 보고 나 이제부터 좀비 영화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하면서 다른 좀비 영화를 시도했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이토 준지는 읽어도 좀비 영화를 못 보겠구나... '오만과 편견'은 내가 읽은 제인 오스틴 소설 중 제일 재미있었다. 그것만 믿고 '설득'을 읽고 몹시 불쾌해하다가 다시 '오만과 편견'을 읽고 역시 재미있어..하면서 '노생거 사원'을 읽다가 역시나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중도포기. 그러니 딱히 '오만과 편견'만을 재미있어 할 뿐 작가의 팬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만과 편견'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하는 것도 아닌 입장에서 말하자면,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재미있다. 원작에 좀비 요소를 넣고 그 요소에 맞게 이야기의 세부를 바꾼 것일 뿐인 이야기로, 원작이 주는 재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좀 더 읽기 쉬워졌다고 할까. 다 읽고 나니 '오만과 편견'이 다시 읽고 싶어져서 또 읽었다.


12. 프랭크 허버트 / 듄 : 미리 말한다. 난 1부만 읽을 거다. 책도 딱 1부만 사뒀다. 하지만 종이책이라서 팔이 떨어져나갈 것 같기에 1권을 읽다가 중도포기. 아주 오래전에 엄청난 번역본으로 읽었을 때 돌아버리는 줄 알았는데 새로운 번역은 그래도 뭔소리인지는 조금 알아먹겠더라. 설정 덕후가 어설픈 문장으로 허세부리면서 쓴 이야기...라고 하면 팬들에게 얻어맞으려나. 1부 서사는 흔한 무협소설과 같다. 외부의 적과 내부의 배신자에 의해 아버지는 죽고 집안은 쫄딱 망해서 본인은 불모지로 내쫓겼으나, 역경 속에서 자신만의 사람들을 만들고 여자도 만나고 영약도 얻어 복수를 하고 집안을 다시 크게 일으켜세운다는 그런 거? 그런 책인데도 포기못한 건 우연히 티비에서 본 드라마 속 눈알 파란 사람들이 뇌리에 박혀서. 그리고 내가 바로 허세에 약한 사람이다! 그뒤로 전자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땅을 치며 후회했다. 조금만 더 기다릴걸! / 결국 이북으로도 샀다.


13. 이시카와 야스히로 /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 선물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을 새롭게 쓴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내용에는 놀랐다. 전쟁 당시의 국제정세를 일본인에게서 이렇게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내 뇌가 썩어서 그런지 몰라도 국사교과서에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게다가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연방에 대한 독자노선을 표방한 점, 과학적인 이론을 위해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활동해온 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낯설고도 놀라웠다. 아직 서문만 읽었지만 본문도 기대된다. / 딱 입문서의 느낌이었다. 적당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달까.


14. 나관중 / 삼국지 : 황석영 번역본으로 읽는 중이다. 이전에 이문열 본을 읽었는데 그게 거의 20년전은 된다. 장정일 본으로 다시 읽으려고 문고판으로 샀다가 등장인물의 말투가 적응이 안 되어서 중도포기. 오랫동안 다시 읽어봐야지 하다가 그냥 황석영 본으로. 역시나 후반으로 갈수록 지루해지고 있다. 인물들도 누가누가인지 모르겠고 1세대가 죽은 뒤엔 다 시덥잖다. FSS도 이런 느낌이었지. 어느 덧 9권인데 빨리 읽어치우고 싶은 마음뿐이다. 후반부엔 공명이 홀로 활약하다가 죽는데, 숭구리당당 느낌의 활약이라  땀을 흘렸다. 역시 내 최애는 조자룡이구나 하는 확인만 했고, 잘 나갈 때는 생각도 깊고 나름 겸손할 줄도 알던 인물들이 죽을 때가 되니 경솔해지고 평소와는 다른 짓을 하며 제 무덤을 파는 것을 보며 사람은 제 죽을 운이 있는 건가 이런 생각도 했다. / 후반부가 진짜 지루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압도적이라서 전반적인 어떤 감상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이걸로 이제 또 한 십년은 삼국지를 못 읽을 것 같다.


15. 박연선 / 어름, 어디선가 시체가 : 추리 자체는 그리 거창할 것은 없었지만 깊은 이해가 필요하지 않느니만큼 쉽게 읽혀서 좋았다. 머리를 쓰기 싫은 요즘. 읽고 난 뒤의 감상은 가볍고, 쉽게 잊혀질 것 같다.


16. 정세랑 / 보건교사 안은영 : 읽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