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누설 많습니다. 알아서 피해주세요. 영화, 「한니발 라이징」에 대한 내용 누설도 포함. 작성 08/2/10 최종 수정 14/5/21
1. 클라리스 스탈링 - 양들의 침묵
클라리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다. 어머니는 모텔 청소부로 일하며 어린 클라리스를 키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클라리스는 친척에게 맡겨진다. 어느날 밤 양들의 울음소리에 클라리스는 잠에서 깬다. 친적집은 도축업을 하는 목장이었던 것이다. 좋아하던 말, 한나가 도살될 것을 막기 위해 클라리스는 한밤 중에 한나를 타고 목장에서 도망친다. 지척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한나와 달리던 밤의 기억은 클라리스에게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클라리스는 양들의 울음 소리에 시달린다. 이 울음소리는 어린 시절 도축당할 양들과 동일한 약한 생물(고아)이라는 입장에서 느꼈던 공포, 그리고 죽음의 위험에 빠진 생물을 구해줘야한다는 의무감을 일깨우는 신호로 변했다. 한니발 시리즈 2권인 「양들의 침묵」은 클라리스가 결국 살인자에게 생명을 위협당하던 한 여자를 구해냄으로써 훌륭히 임무를 완수하게 되고 양들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시리즈의 3권에 해당하는 「한니발」에서 클라리스는 FBI라는 조직에 대한 회의감을 품는다. 그녀의 FBI는 더 이상 약한 자를 구하는 곳이 아닌 썩어빠진 관료조직일 뿐이다. 사실 클라리스가 약한 자를 돕기 위한 목적만으로 FBI에 몸 담은 것은 아니었다. 야간경비원으로 자신의 일에 강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던, 하지만 근무 중 총에 맞아 죽은 자신의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루려고 하듯 FBI내에서의 출세에 집착했다. 그녀는 제임 검브의 사건을 해결하고 모든 것을 손에 넣는 듯 했다. 하지만 연수생인 주제에 동기들에 비해 너무 '튀었고' 여자였다는 점도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특히나 고위관료인 폴 렌들러는 클라리스에게 정복욕과 경멸을 기반으로 한 저급한 성욕도 가지고 있었고 여러 복합된 동기로 그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클라리스의 경력을 방해한다. 연방요원으로서 할 수 있는 자신의 일에 한계가 오지만 적당한 타협을 할 수 없었던 클라리스는 어려움에 빠진다. 무기한 정직 처분을 당한 상태에서 렉터가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클라리스. 요원임을 증명할 배지와 악당을 향해 쏠 총기도 반납당한 상태의 그녀가 고문당하고 살해당할 렉터를 위해 할 일이 과연 무엇일까. 게다가 렉터가 그녀의 유일한 이해자이자 조언자라 하더라도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것 역시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클라리스는 죽은 동료가 유품으로 남겨준, 압수당하지 않았던 유일한 총을 들고 렉터를 구하러 간다. 그 결정으로 인해 FBI를 영원히 떠나게 된다고 해도 그녀는 렉터를 외면할 수 없었다. 후에 렉터는 그녀의 태도가 가지는 일관성에 주목한다. 그것은 고통받는 자들을 보아 넘길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렉터를 구하러왔다. 그리고 그녀의 강인함. 상대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라도 그녀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자신이 총에 맞아죽는 대신 상대를 쏘고서 아이도 구하는 쪽을 택한다. 그런 클라리스의 강인함과 용기는 렉터를 예전부터 매료시켰다. 또한 그녀가 변화할 가능성을 알려주는 유연함. 클라리스는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배지에 집착하지만 배지를 단 자가 악당이며 그가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다면 배지를 피로 물들이게 되더라도 상대를 쏘아 죽일 수도 있는 여자다.
2. 한니발 렉터 - Cannibal Hannibal
「양들의 침묵」에서 렉터는 박사 씩이나 되는 지식인이고 천재라고 불릴만한 남자이지만 살인과 식인을 하는 저급한(!) 동물적 행동을 보인다는 점에서 보통 인텔리에게선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렉터는 지능이 뛰어난 '짐승'이다. 그 점이 끌린다. 게다가 번역자의 차이인지 이윤기 씨가 번역한 고려원에서 나온 구판을 가진 나는 렉터에게서 귀여움(?)과 코믹함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니발」에 나오는 렉터는 너무 고상한 양반이다. 그의 천재적인 능력에는 먼치킨 캐릭터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렉터가 언제 먼치킨 캐릭터가 아닌 적이 있었나. 그는 항상 최종보스였다. 하지만 고상함이라. 게다가 귀족출신이란다. 돈도 많고 힘도 세다. 이쯤 되면 로맨스 소설 남자주인공이다. 어라- 싶었다. 물론 렉터가 클라리스에게 요리(폴 렌들러의 뇌 요리)를 기대하라며 눈을 한번 반짝이는 바람에 다시금 소름이 돋아버렸지만 말이다. 나도 아픔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한 과거의 이야기도 슬픈 것이긴 했지만 클라리스가 렉터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작가의 변명으로 사후 설정같았다고나 할까? 꽤나 들어맞긴 하지만 말이다. 렉터에게도 과거의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는 전쟁으로 부모님을 잃고 어린 여동생 미샤와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식량 보급이 끊긴 패잔병들은 미샤를 잡아다가 어린 그녀의 육체를 식량으로 삼는다. 병사들의 화장실에서 떠오른 미샤의 젖니를 본 것은 렉터의 정신을 어그러지게 만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살인과 식인의 주체인 그가 어린 시절, 살인과 식인으로 소중한 대상을 잃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한니발 라이징」에 대한 흥미가 생긴 후 검색을 해서 영화의 내용을 조금 알았다. 영화에서 렉터는 여동생의 살해자들을 찾아서 제거하는 복수극을 펼치는데 살인자들 중 한명이 렉터를 조롱하면서 너도 네 여동생의 고기를 먹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한다. 그 말에 렉터는 충격을 받는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에겐 그것이 대반전같이 느껴졌겠지만, 나는 렉터가 미샤의 고기를 먹은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생각해보라. 그 자리에서 미샤의 고기를 요구할 권리가 있었던 사람은 렉터 뿐이다. 오히려 렉터는 다른 자들에게 미샤의 고기를 뺏겼다는 것에 화를 내야한다. 미샤와 아무 상관없고 그녀의 의지를 무시하고 살해한 무뢰배들이 미샤의 가족이자 그녀를 사랑하는 오빠인 렉터보다 미샤의 고기를 먹을 자격이 있다고? 렉터의 살인과 식인은 분리되면서도 합일될 수 있는 행위이다. 먼저 살인이 무뢰배들을 제거하는 행위라면 식인은 죽은 자를 먹는 행위로, 살인(무뢰배)과 식인(미샤)의 대상을 분리한다면 둘은 서로 다른 행위이다. 하지만 두 행위는 모두 미샤를 위한다는 점에서 합일될 수 있다. 후에 렉터의 살인과 식인이라는 행위의 대상이 동일해지나(무뢰배를 죽이고 그걸 먹는다) 목적- 1.살아있던 미샤를 죽인 것에 대한 분노 해소 2.죽은 미샤의 고기를 뺏긴 분노의 해소 -은 역시나 동일하다. 그가 고기를 구하기 위해 살인을 하는지 살인을 하고 나니 식인을 하는지는 애매하다. 그렇게 살인과 식인을 반복하다보니 그 선후관계가 상관없게 되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클라리스가 (a) 약한 자를 도와주는 방식으로 고통을 극복한다면 렉터는 이처럼 (b) 살인과 식인으로 고통에 대항한다. 일반적 관념으로 볼 때 클라리스가 선, 렉터가 악.이지만 방식을 평가할 선악개념을 벗어나 살펴보면 그들 행동의 동기와 목적은 동일하다. 둘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이 점이 주요하게 작용한다.
3. 변화, 교합 - 예수의 부활, 레다와 백조
렉터가 납치될 당시 그는 클라리스의 생일선물을 전해주려고 했었다. 클라리스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당시의 나이와 같은 횟수의 나이가 된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이미지는 「양들의 침묵」에서도 등장한다. 자신을 면회 온 클라리스의 얼굴을 스케치한 렉터는 클라리스의 얼굴을 가진 예수상을 그린다. 이 이미지는 그녀의 '고통'을 상징하지 않는다. 고통이 지난 후의 그녀의 변화를 암시한다. 클라리스가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예전의 그녀와는 달라져 있었다. 이를 한 정신의 죽음과 탄생의 과정으로서의 예수 부활에 빗댄다면 신성모독일까. 또한 클라리스를 데려온 렉터의 은신처에 있는 예술품들의 테마는 '레다와 백조의 교합'이다. 작가의 세부적인 장치로 우리는 이 은신처가 변화한 그녀와 렉터가 합일을 이룰 장소임을 알 수 있다. 「한니발」후반, 이곳에서 그 둘은 서로의 대응방식을 교환한다.
(a) 렉터는 자신을 구하느라 다친 클라리스를 치료해준다.
(b) 클라리스는 렉터의 치료 덕에 죽을 고비를 벗어난 후 그가 치료목적 약물(환각작용)을 주입한 상태에서 폴 렌들러의 뇌 요리를 맛있게 먹는다. 모순적으로 보였던 두 사람은 하나의 공생체로 엮였다. 마지막에 둘이 연인이 된 모습은 사람들에게 충격일지도 모른다. 수사관과 살인범이 어떻게 연인이 될 수 있을까.(인간과 짐승이 어떻게 연인이 될 수 있을까.) 「양들의 침묵」으로부터 몇 년 후. 햇병아리 연수생이었던 클라리스는 흡족할 만큼 성장했고 그런 그녀를 렉터는 마치 포도주가 익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낚아채버린다. 이것을 선과 악으로만 본다면 마치 렉터가 클라리스를 악으로 물들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영화 「한니발」 역시 소설의 결말은 사람들의 이해를 얻어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인지 결말을 바꾼다. 때문에 렌들러의 뇌를 요리하는 행위는 어떤 의미도 없는 엽기적 살인으로 퇴화하고, 렉터는 홀로 도망치기 위해 그녀를 끊어내듯 자신의 손을 자른다. 클라리스를 가지고자 한 그의 계획은 실패한 것이다.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까지. 소설 속에서 클라리스와 렉터가 진화를 거듭한다면 영화 속에서 둘은 기존의 시작점(수사관과 살인범) 그 자리에 머물고 만다. 이러니 내가 영화 결말을 싫어할 수 밖에. 나 역시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는 좋아하는 캐릭터인 두 사람이 엮인 것에 대해 감성은 매우 만족했지만 머리는 결말에 납득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사실 그 둘은 정신적으로 매우 닮아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동등해진 둘은 서로를 이해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아픈 곳을 어루만져준다. 렉터는 클라리스를 아버지와 작별시키고 그녀가 폴 렌들러를 극복하도록 돕는다. 클라리스는 렉터가 지켜내지 못했던 미샤 대신 힘을 가진 지금의 그가 지켜낼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 되어준다. 미샤의 오빠로서 빼앗겨야 했던 어머니 대신 다른 누군가에게 양보할 필요가 없는 존재-렉터만의 여자-가 되어준다. 후에 연인이 된 둘은 같이 오페라를 보러가기도 한다. 클라리스의 얼굴은 생기로 반짝인다. 그녀는 웃으면서 렉터에게 말을 건넨다. 그의 손을 잡는다. 같이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즐겁게 서로를 품에 안고 춤을 추고 섹*도 한다. 이런 두 사람이 낯설다고? 당연하다. 이미 더이상 우리가 알던 두 사람이 아니니까. 미래의 어느날 렉터는 다시 미샤의 꿈을 꿀지도 모른다. 클라리스 역시 어디선가 들리는 활 소리에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그 순간에 춤을 추며 웃는 그들. 그리고 그 둘을 지켜보는 나. 모두는 행복하다.
[덧] -오래 전에 쓴 글인데 쓰게 된 계기가 웃깁니다. 당시 「한니발」 소설은 사골이 되도록 읽었지만 워낙 영상물 자체를 안 좋아해서 영화는 미루고 미루다가 보았는데, 렌들러의 뇌 요리 장면이 너무 마음에 안 들더군요. 영화만 본 사람이라면 '제 버릇 개 못 주네.(=저거 또 사람 먹네)'로 보일 테니.... 그래서 그 장면이 소설에서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적어보기로 했던 겁니다. 당시에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집중해서 썼는데 지금 읽으니 고치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거립니다. 하지만 이 나름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대로 두고 어투 정도만 수정했습니다. 귀찮아서 그런 거, 맞아요.
-클라리스 내부에 있는 선한 아버지를 대체하는 크로포드, 반면 남성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렌들러, 두 가지 면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 그녀를 이끌어주고 사로잡는 렉터의 삼파전 같은 구도는 빤히 보여서 딱히 분석하지 않았습니다.
-렉터가 인육을 먹는 것에 대해, 무뢰배들을 '사람'이 아닌 '놓아 기르는 가축(실제로 「한니발」에서 렉터가 그렇게 생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취급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식인을 모독행위로만 보기에는 그가 음식에서 추구하는 미학은 심상찮지요.
-레드 드래곤은 제가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절판상태여서 중고서적으로 구매는 했지만 책 상태가 너무 더러웠고, 클라리스가 나오지 않으니 읽을 의욕이 떨어져서 대강 발췌독만 마친 상태입니다. 언젠가 날을 잡아 그때는 생각도 못했던 브로맨스의 관점에서 읽어봐야겠지요. 안 될 것 같지만. (하하) -한니발 라이징은 지금도 관심이 없고 앞으로도 읽을 생각이 없습니다. 저에게 한니발 라이징은 한니발 시리즈의 일종의 외경 같은 존재예요. 비록 원작자가 쓴 글이지만 젊은 시절의 한니발이 이랬을 수도 있다는 하나의 가정으로 여길 뿐, 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요즘 전 주로 전자책을 읽는데 한니발 시리즈가 전자책으로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망상합니다.